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7년 외환 위기/영향 (문단 편집) ==== 철도 및 항공 교통업계 ====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신도시 건설 및 교통수요 증가, 도로교통 인프라 치중 등에 따른 낙후 등으로 많은 역이나 공항 등의 시설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헬게이트]]가 열리는 곳이 많았다. 가뜩이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한일월드컵]] 유치에 성공하며 전체적인 철도 항공 교통시설의 확충이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KTX|고속철도]], [[인천국제공항|신공항]], 지역별 지하철 신설계획 등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계획들이 세워졌는데, 문제는 이 계획들이 세워진 시기가 대부분 IMF가 터지기 직전인 1990년대 초중반이었다는 것. 많은 SOC 확충 계획들이 착수하기도 전에 외환위기가 터졌고 [[IMF]]가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개입하면서 대부분 폐기되거나 갈아엎어졌다. 이미 시행중인 공사들의 경우 공기가 늦춰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대부분 공사들이 월드컵 전후로 완공하는 것으로 계획되었으나 외환 위기는 그 대부분의 계획을 지킬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을 지나는 [[서울 지하철 6호선]]도 타 노선에 비해 난공사 구간도 많고 화강암 지대도 많이 지나가고 특히 [[보문역]]~[[돌곶이역]] 구간은 지질조사 때도 발견되지 않은 화강암 단층지반까지 발견돼서 난이도가 극악으로 높아 예산도 많이 들어갔으며 게다가 시공사 측도 3번씩이나 부도가 나서 개통이 늦어졌다. 6호선 전구간은 2000년에 개통되었지만 [[이태원역]]~[[약수역]] 구간은 시공사의 부도로 완공이 지연되었다가 2001년에서야 개통되었다.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철도업계의 [[도시철도]] 사업도 큰 타격을 받았는데 '''서울 [[3기 지하철 계획]]이 [[서울 지하철 9호선]]과 3호선의 [[오금역|오금]] 연장을 제외하고 전부 폐지되었고''' 부산 4호선과 [[부산 도시철도 5호선|5호선]], 대구 3~6호선, 대전·광주 2~5호선, 인천 2~3호선, 부산 3호선 반송선(이후 4호선으로 분리된 그것) 등 수많은 계획들이 지연 및 변경되거나 폐지되었다. 이 때까지의 부산 4호선은 [[부산항]] 앞바다에 인공섬 해상신도시를 매립해 연결하는 노선으로, [[2011년]] [[3월 30일]]에 개통한 [[부산 도시철도 4호선]]([[반송선]])과는 전혀 다른 노선이다. 서울의 [[3기 지하철 계획]]이나 [[부산 도시철도 5호선]]처럼 같은 시기에 외환 위기로 백지화되었던 다른 노선들은 대부분 [[경전철]]로 대체되어 재추진 중이지만 '''이 경우 노선의 핵심인 [[부산 해상신도시 계획]] 자체가 무산되면서 부활의 여지도 없이 완전히 폐기되었다.''' 추후 인공섬 대신 [[북항재개발]]지구로 지정되어 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또 [[대구도시철도공사|대구지하철공사]] 측도 외환위기까지 겹쳐 1호선이 적자만 나자 빚을 갚기 위해 인력 감축을 거듭 감행했는데 이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야기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됐다. 많은 비용이 드는 당시 대부분의 [[지하]] '''유인''' 운전 [[중전철]] 계획들은 현재 [[지상]] [[부산 도시철도 4호선|무인]] [[인천 도시철도 2호선|운전]] [[대구 도시철도 3호선|경전철]]([[모노레일]] 포함) 계획으로 대체되어 각지에서 건설되거나 운행되고 있다. [[광주광역시]] 같은 경우는 [[광주 도시철도 1호선|1호선]]을 추후 계획 노선들의 [[환승]]용 보조 노선으로 먼저 착공하였지만, 2~5호선의 추후 계획이 전부 취소됨에 따라 1호선만 제대로 추진되어서 [[공기수송(교통)|공기수송]]하는데 재정 부담의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또한 완공을 눈앞에 다가왔던 [[경부고속선]] 공사 또한 외환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도중에 공사가 중단되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고속선 완공을 제 시간에 이루지 못하였으며 대구~부산 구간은 도중 예산 절감으로 인해 고속선을 건설하지 않았으며, 이 구간의 고속선 공사가 끝날 때까지 기존 경부선을 전철화시켜 밀양을 거쳐 부산으로 가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그래도 다른 간선, 도시철도 계획들은 모조리 취소되었지만 고속철도 계획의 경우 이미 서울에서 부산 방향으로 60% 이상(서울~대구) 토목 공사와 시설 설치(교각, 터널, 선로, 가선, 신호)를 완료해 놔 도중에 중단하기 뭐한 상황이었기에 정부에서 되도록이면 살리려 했다고 한다. 사실 [[국제통화기금]]이 전면적으로 각 [[지방자치단체]]의 [[도시철도]] 계획을 완전히 철폐한 것은 아니었다. 지자체들이 도시/광역철도를 계획할 때 [[민자사업]]을 유도하여 당시 위기에 빠진 [[기업]]들을 구제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의도는 좋았다]]. 계획상 보면 알겠지만 [[3기 지하철 계획]]이나 각 지방들의 철도 사업은 지금 추진하려고 해도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을 엄청나게 압박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대규모 사업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100% 세수만으로는 불가능했고 처음에는 [[민자사업]]을 다들 고민했다. [[서울 지하철 9호선]] 등 일부는 [[민자사업]]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시 민자사업을 할 수 있을 법한 수준의 기업들이 외환위기 과정에 줄줄이 쓸려 나갔으므로 추진 주체가 없어서 무산된 것. 나중에 [[현대자동차그룹]]이 출자한 [[서울 지하철 9호선]] 정도만 부활했다.[* 현재 [[서울시메트로9호선]]은 [[NH농협금융그룹]]이 최대주주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국고에 돈이 없는데 공공사업을 벌여 경기순환을 진작시킬 필요는 있었기에 문민정부 시기에 시작된 민자사업 형태의 공공사업 집행을 국민의 정부 시기에 크게 확대해 도로망을 확충하는 등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시행착오가 많아서 눈뜨고 코베이는 상황을 자초하기도 했고 지역 정치인과 발주자와 채권자와 평가용역기관이 돈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이것은 국민의 정부 말기에 가서 고쳐지기 시작했고 이후 정부는 민자사업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이미 집행된 사업에 대해서는 부채 재조정 등 뒷처리에 힘쓰는 처지가 되었다. 항공 교통 측면에서도 타격이 심했는데 수많은 외국 항공사들이 당시 한국 노선을 단항하거나 운항 횟수 또는 운항 항공기 규모를 축소시켰다. 이때 철수한 다수의 외국 항공사들은 외환위기가 극복되고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한 후 하나둘씩 한국 노선 운항을 재개했다. 인천국제공항도 외환위기로 인해 개항이 지연되다가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1년 전인 2001년에야 간신히 개항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대형 한국 국적사들도 이때 이용률이 저조한 상당수의 노선들을 정리했다. 한국 노선 철수 이후 아예 항공사 자체가 망하는 바람에 복항하지 못한 항공사들도 있다. 예를 들면 [[안셋 오스트레일리아 항공]]이나 [[바스피]][* 사실 바스피는 이전에도 국제선을 무리하게 확장하는 바람에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스위스에어]]. 반면 [[핀에어]]나 [[아메리칸 항공]]처럼 외환위기 이전에도 한국에 관심이 없었다가 2000년대 후반 이후에야 한국 노선에 취항한 항공사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